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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늦은 저녁 나는
어느
늦은 저녁 나는
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
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
그때 알았다
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
지금도 영원히
지나가버리고 있다고
밥을 먹어야지
나는 밥을 먹었다
새벽에 들은 노래 3에서
이렇게 한 계절
더 피 흘려도 좋다
저녁의 대화에서
나직이, 더없이,
더없이 부드럽게.
그 노래에 취한 당신이
내 무릎에 깃들어
잠들 때까지.
파란 돌
십 년 전 꿈에 본
파란 돌
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
난 죽어 있었는데
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
아, 죽어서 좋았는데
환했는데 솜털처럼
가벼웠는데
투명한 물결 아래
희고 둥근
조약돌들 보았지
해맑아라, 하나, 둘, 셋
거기 있었네
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
그 돌
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
그때 알았네
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
그때 처음 아팠네
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
난 눈을 떳고,
깊은 밤이었고,
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
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
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
놓친 적도 있을까
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
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
그 푸른 그림자였을까
십 년 전 꿈에 본
파란 돌
그 빛나는 내[川]로
돌아가 들여다보면
아직 거기
눈동자처럼 고요할까
해부극장에서
(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걸.)
(괜찮아, 이렇게 좀더 있자.)
해부극장 2에서
진심이야.
후회하고 있어.
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.
피 흐르는 눈 3
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
초여름 천변
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
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
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에 대해서
(정말) 허락된다면 묻고 싶어
그렇게 부서지고도
나는 살아 있고
살갗이 부드럽고
이가 희고
아직 머리털이 검고
차가운 타일 바닥에
무릎을 꿇고
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
살려줘,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
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
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
부서진 입술
어둠 속의 혀
(아직) 캄캄하게 부푼 허파로
더 묻고 싶어
허락된다면,
(정말)
허락되지 않는다면,
아니,
괜찮아에서
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
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
어떻게 해야 하는지
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
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
괜찮아
왜 그래,가 아니라
괜찮아.
이제 괜찮아.
회복기의 노래
이제
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
물으며 누워 있을 때
얼굴에
햇빛이 내렸다
빛이 지나갈 때까지
눈을 감고 있었다
가만히
몇 개의 이야기 6
어디 있니.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. 내 목소리 들리니. 인생 말고 마음, 마음을 걸려고 왔어.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. 알고 있니.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.
몇 개의 이야기 12
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,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(原石)과 같다.
서울의 겨울 12
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
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
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
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, 네 사랑
내 가슴에 잠겨
차마 숨 못 쉬겠네
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, 네 먹장 입술에
벅찬 숨결이 되어주지, 네가 온다면 사랑아,
올 수만 있다면
살얼음 흐른 내 뺨에 너 좋아하던
강물 소리,
들려주겠네